2014년 3월 16일 일요일

쓰레기통 모형(Garbage can model)과 트켓몬(Twitch plays pokemon)

이 글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쓰레기통 모형이 뭐야?" "트켓몬이 뭐야?" 둘 중에 하나의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참 묘한 소재지만 요새 공부하며서 짬짬이 트켓몬 밈을 따라잡다 보니 이런 이상한 걸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트켓몬은 twitch plays pokemon의 약자로, 접속자들이 채팅에 입력한 커맨드를 그대로 받아들여 포켓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임방송이다. 시청자 수가 만 단위에서 십만 단위를 넘나드니 실제 채팅 참가자 수가 1%만 되어도 게임의 진행은 혼돈 그 자체일 수밖에. 심지어 몇 시간 동안 회복 하나를 못하고 마을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니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어려운 부분에서 쓸 수 있도록 democracy라는 새로운 체제가 등장한다. 일정 시간 동안 입력을 받아 가장 높은 투표를 기록한 커맨드를 실행하는 것이다. (말만 들으면 democracy로 모든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입력과 실행간 시차 때문에 상당한 인내심과 예측, 협력을 필요로 한다.)

자 그러면 쓰레기통 모형이란 무엇인가. Garbage Can Model은 조직의 구성단위나 구성원 사이의 응집성이 아주 약한 혼란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의 특징을 강조하는 모형이다. 이러한 혼란상태를 조직화된 무정부상태-organized anarchies라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의사결정이 쓰레기들이 마구 엉켜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쓰레기통 모형이다.

쓰레기통 모형에는 세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문제성 있는 선호(problematic preferences)이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트켓몬 플레이어들 간에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합의가 없다. 그리고 각 개인들조차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다. pc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난관을 민주주의로 돌파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이 상시적으로 발생한다.

둘째, 불명확한 기술(unclear technology)이다. pc에서 썬더를 꺼내오려면 무슨 연속 커맨드에 투표해야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딜레이나 커맨드가 먹히는 속도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계속 시도해 볼 수밖에 없다. 목표가 명확하더라도 최선의 수단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셋째, 수시적 참여자(part-time participants)이다. 플레이어들은 언제든지 게임에 참여할 수 있고 언제든지 접속을 종료할 수 있다. 그나마 트켓몬의 플레이어 집단은 대규모라 이런 측면이 의사소통의 장애물로 부각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경우 의사결정은 문제가 있다->해결책을 찾아보자->사람 모아서 회의하자->통과!가 아니라, 문제의 흐름, 해결책의 흐름, 참여자의 흐름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다가 기회가 있으면 갑작스레 해결책이 채택되는 식이다.

이러한 무정부상태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나려면 점화계기(triggering event)가 필요한데, 예를 들어 pc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파오리 Dux가 실수로 방생되는 이벤트가 발생하면 충격을 받은 모두가 힘을 모아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의 방식은 주로 1. 진빼기 결정(choice by flight): 관련된 문제들이 스스로 다른 기회를 찾아 떠날때까지 기다리기, 2. 날치기 통과(choice by oversight)인데... 트켓몬이 대부분 미국 시간으로 새벽, 사람 없는 시간대에 진행이 빠르다는 점에 부합한다...

지금 이 시각, 트켓몬은 레드버전에 이어 크리스탈 버전을 클리어한 상태이다. 이들은 하나의 종교를 세우고 그 신들과 다시 싸워 이기는 서사를 성립시켰다. 그것만으로도 참여자 모두는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만 게임 자체의 스토리라인이나 퍼즐이 이미 존재하는 해답을 돌파해나가는 것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몇 명의 참가자가 채팅이나 레딧 등에서 다른 이들을 리드해줄 수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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