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크리스마스 이브&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요리를 다 끝낸 후 한참 토하고 누워 있었다. 역시 아침에 어제 남은 음식을 먹은 게 문제였나봐. 상했는지 애매한 건 안 먹는 게 좋겠다. 불고기 잔뜩 만든 게 아까워서 파티에 들고 가라고 했는데 다행히 다들 잘 먹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밥 한 공기를 해서 죽을 쑨 후 하루종일 먹었다.
멸치로 국물도 냈고 치즈, 계란, 참기름, 잘게 썬 양파를 넣어서 간을 했더니 맛은 있었다. 그것만 먹었더니 배가 고프다.  원래는 레스토랑에 가서 다같이 먹을 계획이었는데 이 상태론 불가능해서 나 혼자 집에 남아 멍때리고 있다. 멍...

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다하우 수용소Dachau Concentration Camp in Munich 2012 Dec 15


다하우 수용소는 뮌헨 근처에 있었던 나치의 Concentration Camp 중 하나로, 같이 간 슬로베니아 친구에 의하면 아우슈비츠보다 잘 보존되어 있고 전시도 충실해서 굳이 폴란드까지 가는 것보다 여기에 오는 게 낫다고 한다.
역사의 치부를 이렇게 보존하려고 노력하기 꽤 힘든 일일 텐데. 박물관 곳곳에는 이를 위한 모금함도 설치되어 있다. 
입장료는 무료로, 오디오가이드를 돈을 내고 빌릴 수 있다. 오디오가이드는 같이 주는 맵을 보면서 작동하면 되는데 중심 주제-세부 주제로 나뉘어 있어서 참고하기 편하다. 큰 제목으로 전반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선택해서 세부 주제를 듣는 식으로 관람하면 된다.

여기가 입구에 있는 매표소 건물이다. 카페테리아가 딸려 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 
(출처:http://en.wikipedia.org/wiki/Arbeit_macht_frei)
라는 말이 새겨진 철문을 지나치면 아침 점호를 위한 마당이 나타난다. 
이 곳은 처음 수감된 사람들이 도착하는 곳이었고, 매일 아침 점호가 벌어졌던 곳으로 숫자를 세기 위해 시체도 끌려나오곤 했다고 한다.
위의 건물이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박물관 건물은 원래 캠프의 관리 건물이었고, 전시 사이사이에 이러한 버려진 방들이 남아있다. 전시는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시기의 역사부터 캠프의 변천, 이 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의 수감 과정, 기록, 분류, 사망, 강제 노동, 잔인한 인체 실험, 해방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국적과 인종에 따라 스페인인, 오스트리아인, 독일인, 폴란드인, 루마니아인, 러시아인, 집시, 유대인 그리고 게이, 거지, 부적응자, 전쟁포로, 정치적 반대자, 공산주의자들이 끌려왔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중에서도 유대인 비율이 늘어났다. 이들은 옷에 달고 있는 별의 색깔로 무엇 때문에 잡혀 왔는지 쉽게 식별할 수 있었다. 핑크색 별을 단 사람은 동성애 때문에 수감되었다는 식이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인체 실험과 괴롭힘, 질병, 굶주림, 혹사로 사망률은 치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감자들은 시를 쓰고 노래를 하기도 하고 저항하려고 하기도 한다. 해방, 그리고 죽은 자들에 대한 기념실을 끝으로 박물관을 나오면 앞쪽으로 막사가 보인다.

막사 내부는 이렇게 침대로 꽉 차 있다. 3층으로 된 침대들은 한 몸 누이기도 비좁아 보인다.

막사를 나와서 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종교 기념물이 있다. 이것 외에도 유대교, 러시아 정교회 등의 기념물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다. 여기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화장장이 있다. 너무 많아 공동 무덤에 넣기도 버거워진 시체들을 화장시키던 곳이다.

때로 이 화장장 바로 앞에서 교수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샤워실이라고 이름이 써 있는 가스실도 그대로 남아 있다.

Grave of Thousands.
보통 관광객들은 부산을 떨고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 바쁘다. 하지만 이 곳에서 사람들은 별로 말이 없다. 
단순히 끔찍한 사람들이 끔찍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장과 같은 공간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일. 그것이 이 곳의 눈밭 위를 걸으며 느끼는 소름의 정체가 아닐까?

2012년 12월 18일 화요일

교환'학생' 생활은 거의 마무리.

내일 기말 과제를 내고 나면 수업 일정은 마무리다.

남은 한달 반 정도는 거의 여행으로 보낼 것 같다. 월요일마다 돌아와서 수업을 듣긴 하지만.

터키만 친구들이랑 가고, 런던, 파리, 로마, 베를린-함부르크까지 혼자 다닌다.

여러가지로 아쉬움은 남지만, 살짝 아쉬울 때야말로 떠날 때겠지.

페이퍼 내고 나서 다하우 수용소 후기를 좀 써봐야겠다...

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돌아보면...

사회성은 없고
외모가 잘나지도 않았고
대충 아는 건 많지만 제대로 아는 건 없고
조금씩은 할 줄 알아도 잘 하는 건 없고
좀 하던 건 시간이 지나며 잊어버리고
그나마 꾸준히 유지되는 능력이라고는 객관식 시험 치는 능력 뿐인데
그렇다고 가르치는 걸 잘 하는 것도 아니며
덕질도 얕고 넓게 하다가 최애캐도 최애작도 어느덧 잊었고
그렇게 시드는 수밖에 없더라 하는 이야기...

2012년 12월 11일 화요일

요새 듣는 음악들


MGMT-Siberian Breaks



Vampire Weekend-Horchata

폭설


이렇게 내리고도 눈이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설이 된 길만 따라 걷지 않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발이 푹푹 빠져서 걸을 수가 없으니까...

2012년 12월 8일 토요일

오스트리아에서, 보드게임들






예전에 할로윈용 쇼핑이나 할까 하고 동네 가게들을 돌아다니다가 찍은 사진.
애들 장난감 가게 같은 느낌인데 보드게임을 판다. 꽤 많다. 물론 하드코어한 건 없지만...

2012년 12월 6일 목요일

2012년 12월 1일-2일 베를린Berlin


베를린은 여러모로 서울을 떠올리게 했다.
붐비고, 특색이 부족하고, 혼란스럽고, 공사중인 곳이 많다.




어차피 베를린은 다시 올 예정이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몇 군데만 보기로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무리하긴 했다. 오늘만 몇 km를 걸어다닌 건지...;



체크포인트 찰리. 좌측으로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일명 벽 박물관이 보인다.
베를린 장벽과 세계 각지의 인권운동에 관련된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은 안 된다. 몰래 동독을 탈출하는데 사용된 수트케이스와 차량, 가짜 제복 등을 볼 수 있다. 마틴 루터 킹이나 간디처럼 뭔가 뜬금없어 보이는 내용도 있고-_-;; 동유럽 국가들의 역사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글씨가 너무 빽빽하고 전시가 조잡한 면이 있다..

체크포인트 찰리의 서독 방향 표지판.

브란덴부르크 문. 여기까지 정말 열심히 걸어갔다.
춥고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호스텔 시설이 좋아서 살았다. 마치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의 호텔급 시설... 씻고 깔끔하고 따뜻한 침대에 정말로 살 것 같았다. 
문제는 창 밖에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는 것. 게다가 같은 방의 예쁜 여자애 둘이 밤 열두시에 일어나서 Suicide Circus라는 클럽에 갔다가 새벽 서너시에 들어왔다는 것. 반쯤 잠든 상태에서 엿들었는데 애들이 뭔가에 완전 취해서 자기가 무슨 소리 하는지도 모르는 듯 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일찍 일어나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산책을 나갔다.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 중 가장 긴 구간에 그림을 그려 놓은 것을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라고 한다.



보다시피 낙서로 뒤덮여 있다.

위의 사진을 잘 보면 연도마다 장미꽃을 볼 수 있는데 그 해에 장벽을 넘다 죽은 사람에게 하나씩 바쳐져 있다. 

이 샤갈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그림 앞에서 어느 커플이 두 번이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난 착하니까 진짜 예쁘게 찍어줌.

체크아웃 한 후,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중앙역으로 정오까지 갔다. 기차 시간까지 좀 남아서 우연히 역 안의 서점에 들어갔는데 잡지 아니면 만화책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건 게임 잡지가 무지하게 많다는 것. 그것도 닌텐도 위,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모바일, pc 플랫폼별로 종류별로.


 좀 비싸길래 사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래의 잡지를 발견했다. 오블리비온 풀버전을 부록으로 준다는 내용인 것 같아서 사 버렸다. 하지만 집에 와서 실행해본 결과 독일어 버전이고 언어 변경이 안 된다는...이걸로 독일어 공부하게 생겼다는...^^;

대충 게임 리뷰가 주인 잡지인 것 같다.
7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집에 오자 마음이 놓인다. 이제 1월쯤 되어야 런던으로 다시 혼자 여행을 떠나겠지.
지금까지 한 여행에는 마음 속에 테마가 되는 책이 한 권씩 있었다. 비엔나-멜크 여행에는 장미의 이름, 드레스덴에는 제5도살장, 베를린에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앞으로 런던, 로마, 파리를 혼자 다녀야 되는데 이번에는 안 읽은 책을 테마로 해서 읽으면서 다녀 볼까 생각중이다. 

2012년 12월 3일 월요일

2012년 11월 30일, 드레스덴 Dresden

새벽에 일어나 5시 49분 기차를 탔다.  사실 티켓도 잘못 끊었는데 검표하는 차장 아저씨가 잠시 고민하더니 봐주었다. 뮌헨에 도착해서 레일 패스 개시하겠다고 Reisezentrum, Travel center를 찾아 돌아다녔는데 한 바퀴를 돌아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창구 언니가 저 쪽이랬는데...
고민하던 나에게 어느 할아버지가  Was suchen Sie? 하고 물어본다. 당황해서 트...트래블 센터? 이랬더니 열 걸음 앞에서 찾아주신다. 당케 쉔을 외쳤더니 기특했는지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 가셨다. 예상치 못한 친절이 기쁘지만 나 몇 살로 보인 걸까 생각하면 조금...흑흑


무사히 패스를 개시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3.2유로짜리 랩핑된 샌드위치를 샀다. 이게 나의 아침 겸 점심이었다. 맛은 그저 그랬다.

고속기차를 타고 뉘른베르크에서 갈아탔는데, 드레스덴까지 한참을 가야 하는 기차는 그 지방의 느린 기차였다. 창 밖 풍경은 발 한번 디디지 않은 눈밭. 눈이 많이 온다 싶더니 기차가 거북이걸음을 한다. 안내방송에서 들리는 단어는 langsamer(천천히?) 밖에 없다. 아마 지연되나 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옆자리 독일 여자분은 스도쿠 하느라 정신이 없고.

기차는 한시간 반 늦은 세시 반에야 드레스덴에 닿았다. 북쪽으로 오자 오히려 눈이 그치고 비가 조금씩 왔다. 호스텔로 가는 국철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유럽의 겨울답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호스텔은 낡고 아늑한 곳이었다. 짐만 정리하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러 나갔다.


지도도 보지 않고 무작정 걸었다. 호스텔이 신시가지에 있었기 때문에 방향만 구시가지로 잡고 있었다. 신시가지에도 깔끔한 느낌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있었는데,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글뤼바인을 마시고 있었다.

구시가지로 가는 다리에서 바라본 드레스덴은 정말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어떤 멍청이들이 여기에 폭격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드레스덴이 커트 보네거트의 제 5도살장에서 묘사된 대로 철저히 파괴를 당한 것은 사실이다. 18000명이 폭격으로 희생되고 도시는 폐허로 변했으며, 동독 정부는 전쟁을 기억하기 위해 이를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1989년 통일 후에야 지금의 모습대로 재건되었고 드레스덴은 번화한 도시가 되었다. 신 시가지에 과거의 어두운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음악소리와 소시지 굽는 냄새를 따라 걸어가니 작은 광장에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이 나타났다. 3유로 정도인 글뤼바인을 사 마시자 추위도 견딜만해졌다.컵 보증금으로 3유로를 더 내야 하는데 컵을 돌려주면 다시 준다.

인파를 따라 내려가자 프라우엔 교회 앞에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반대방향에는 드레스덴의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인 알트마르크트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다. 작은 무대에서는 캐롤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어린아이들은 킨더푼쉬(무알콜 글뤼바인)를 마시고, 어른들은 모여서 손을 녹이며 이야기 중이다. 아기자기한 장식물, 놀이기구, 조명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다리 아픈 것도 잊고 걷게 만든다.




(하지만 배는 고팠기 때문에 튀링겐 소시지에 글뤼바인도 한잔 더 마셨다.)
집에 돌아올 때쯤에야 추위가 느껴졌다.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조금 쉬었다.  4인 믹스돔에 남자만 둘 묵고 있어서 코 고는 소리가 시끄럽긴 했지만 잘만 했다. 드레스덴에서 잠시라도 얘기했던 사람들은 참 친절하고 평온했다.
여기 있는 사진들은 엄청나게 많은 예쁜 사진들 중에 랜덤으로 몇 개 고른 것일 뿐이라는 사실...